또드락 또드락

자식의 이름 (2016.9.29)

Eliot Lee 2016. 9. 29. 11:21

원래 아들의 이름은 도원이었다. 에 멀 ’, ‘道遠. 집안에 돌림자가 이었다. 내 아버지, 그러니까 내 아들의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문구인 任重道遠에서 따왔다.

 

맡은 바 소임은 무겁고 이를 수행할 길은 멀다는 뜻으로 논어에 실려있는 글귀이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한 말로 위정자의 길을 얘기하거나 선비의 소임으로 해석이 된다.

 

내 아버지께서 이 같은 글귀에서 손자의 이름으로 정한 것은 학자로서의 삶을 투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아들의 이름은 기원이가 됐다. 일어날 에 멀 ’. ‘起遠’. 여러 역학적인 고려(?)와 고민의 산물이었다.

 

나는 기원이란 이름도 참 마음에 든다. 당당하게 일어나서 자신의 길을 씩씩하게 가는 아들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고향집에 내려갈 때면 종종 아들아 일어나라, 갈 길이 멀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아들의 태명은 만나였다. 그 시기에 봤던 <고녀석 맛나겠다(2010)>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초식공룡 아들 맛나에서 따왔다. 여기에 우리 곧 만나자는 의미를 덧붙였다.

 

<고녀석 맛나겠다>는 애니메이션은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르스 하트가 우연히 길에서 초식공룡 아기 안킬로사우르스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담고 있다. 얼떨결에 아빠가 된 육식공룡과 사랑스런 초식공룡 아들 맛나의 이야기에서 남자에서 아빠로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 내 모습을 봤다.

 

육식공룡 하트가 겪는 변화와 갈등, 삶이 곧 내 이야기. 그리고 너무도 사랑스러운 하트와 맛나의 관계를 우리 부자 관계에 투영했다.  

 

자녀 또는 손자의 이름은 아버지, 어머니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들이 바라는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내 이름과 동생 이름의 은 젊은 시절 내 아버지, 어머니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한 시민의 장례식장에서 유독 내 마음을 울린 것은 유가족의 이름이었다

백두산’, ‘도라지’, ‘민주화’.

 

자녀들의 이름에서 그 분의 삶과 정체성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무엇을 관통하며 살아왔는지 느껴지기에 더욱 더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시민이 죽었다. 아니, ‘시민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