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아들의 이름은 도원이었다. 길 ‘道’에 멀 ‘遠’, ‘道遠’. 집안에 돌림자가 ‘遠’이었다. 내 아버지, 그러니까 내 아들의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문구인 ‘任重道遠’에서 따왔다.
‘맡은 바 소임은 무겁고 이를 수행할 길은 멀다’는 뜻으로 논어에 실려있는 글귀이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한 말로 위정자의 길을 얘기하거나 선비의 소임으로 해석이 된다.
내 아버지께서 이 같은 글귀에서 손자의 이름으로 정한 것은 학자로서의 삶을 투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아들의 이름은 기원이가 됐다. 일어날 ‘起’에 멀 ‘遠’. ‘起遠’. 여러 역학적인 고려(?)와 고민의 산물이었다.
나는 ‘기원’이란 이름도 참 마음에 든다. 당당하게 일어나서 자신의 길을 씩씩하게 가는 아들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고향집에 내려갈 때면 종종 “아들아 일어나라, 갈 길이 멀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아들의 태명은 ‘만나’였다. 그 시기에 봤던 <고녀석 맛나겠다(2010)>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초식공룡 아들 ‘맛나’에서 따왔다. 여기에 ‘우리 곧 만나자’는 의미를 덧붙였다.
<고녀석 맛나겠다>는 애니메이션은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르스 하트가 우연히 길에서 초식공룡 아기 안킬로사우르스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모험을 담고 있다. 얼떨결에 아빠가 된 육식공룡과 사랑스런 초식공룡 아들 맛나의 이야기에서 ‘남자에서 아빠’로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 내 모습을 봤다.
육식공룡 하트가 겪는 변화와 갈등, 삶이 곧 내 이야기였다. 그리고 너무도 사랑스러운 하트와 맛나의 관계를 우리 부자 관계에 투영했다.
자녀 또는 손자의 이름은 아버지, 어머니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들이 바라는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내 이름과 동생 이름의 ‘卓’과 ‘直’은 젊은 시절 내 아버지, 어머니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한 시민의 장례식장에서 유독 내 마음을 울린 것은 유가족의 이름이었다.
‘백두산’, ‘도라지’, ‘민주화’.
자녀들의 이름에서 그 분의 삶과 정체성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무엇을 관통하며 살아왔는지 느껴지기에 더욱 더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시민’이 죽었다. 아니, ‘시민’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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