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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자수성가의 덫 … 영웅은 누구를 위해 헌신하는가? (2015.5.6)

Eliot Lee 2015. 5. 26. 17:04

“세기의 대결, 메이웨더 대 파퀴아오!”
“복싱 엘리트 집안 출신 대 빈민가 출신의 헝그리 복서”
“돈 밝히는 악동 대 자선사업을 펼치는 정치인”


지난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의 세계복싱평의회(WBC)·세계복싱기구(WBO)·세계복싱협회(WBA) 웰터급 통합 타이틀전에 짜인 프레임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는 이미 엄청난 대전료와 중계권료, 입장권 가격 등을 내세워 ‘세기의 대결’이라는 타이틀로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또한 계체량 측정마저 행사로 만들면서 관심을 증폭 시켰다.  *Publicity Stunt, Pseudo Event

 

* Publicity Stunt : 특정 쟁점을 부각하거나 상품의 홍보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연출된 상황 또는 이벤트 (Pseudo Event)를 만드는 것. 언론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이 목적. 신제품 발표회나 프리젠테이션 역시 전형적인 Publicity Stunt.
* Pseudo Event(擬似 사건) :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 Daniel J. Boorstin이 만든 말.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꾸민 사건

 

여기에 ‘엘리트 대 빈민’, ‘악동 대 모범 정치인’으로 짜여진 프레임은 대결의 극적인 긴장을 높이고 흥미를 더하는데 중요한 양념으로 작용했다. 그야말로 흥행을 위해 세심하게 잘 짜여진 경기였다.


이 같은 프레임이 작동해서인지 주변에선 파퀴아오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우리는 ‘본태성(?)’ 천재나 엘리트보다는 스스로 역경을 이겨낸 인물에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또한 자수성가를 이뤄낸 사람의 능력과 성품이 더 훌륭할 것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문화라는 ‘후천적(?)’ 양식 -정확히는 신화- 이 구축해놓은 의식 구조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영웅의 서사구조(敍事構造, Narrative structure)’가 그것이다. 

 

영웅은 역경 속에서 승리를 쟁취한다. 그리고 모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힘으로 세상을 바꿔나간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인생 여정은 대체로 이와 같다. (실제로 이와 같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이와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역경을 통해 지식과 힘, 권능을 얻었을 것이라고 여기고 그가 세상을 보다 좋게 바꾸는 일 또는 공적 책무를 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영웅의 서사구조는 어릴 때부터 학습된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 3살 아들 녀석도 번개맨이란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이 같은 신화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의식 구조를 형성한다. 아들녀석은 번개맨을 흉내를 내면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에 빠진 듯 힘든 상황을 연출하고 이어서 그것을 극복하면서 환희의 미소를 짓는다.

 

예컨데 아파서 쓰러져있다가 엄마나 아빠가 “번개맨, 힘을 내요!”라고 하면 낑낑거리면서 일어서서는 한팔을 번쩍 들면서 다시 힘을 얻은 번개맨의 흉내낸다. 

파퀴아오를 응원하는 우리는 영웅으로 그를 투사(Projection)하고 있는 것이다.

 

 

 * 영웅의 서사구조(敍事構造, Narrative structure)

 

이야기는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툴. 우리는 신화나 민담,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를 접한다. 서사구조란 바로 신화나 민담, 소설 같은 서사물에서 사건들이 결합하는 방식이나 서로 맺고 있는 연관 관계 또는 질서

 

영웅들의 신화에도 이 같은 정형적인 서사구조가 존재한다.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은 전세계 영웅들의 신화를 조사 분석한 책 ‘The Hero With Thousand Faces’(1949)에서 서사구조와 스토리텔링의 원형을 밝히고 있다.

 

영웅은 평범한 일상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신비의 땅으로 뛰어들고(Departure), 거기에서 기막힌 힘들과 조우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 (Initiation). 그리고 영웅은 신비한 모험에서 전세계를 개선할 수 있는 boons를 가지고 돌아온다(Return).

 

Monomyth or Hero's Journey By Joseph Campbell

 

# 출처 : abulaphiaa.wordpress.com/2011/10/25/heros-journey-original-form-of-storytelling/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수많은 자수성가(自手成家)형 정치인들을 만나고 있다. 실제로 역경을 겪었는지 어떻게 극복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꺼내놓은 인생 이야기들은 대부분 역경을 극복한 ‘시대의 표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역량과 의지를 높이사면서 그들이 공적 책무에 헌신할 것을 기대한다. 자수성가는 정치에서 가장 흔히 쓰는, 가장 잘 먹히는 ‘커뮤니케이션 콘셉트’인 것이다.


하지만 ‘자수성가’라는 프레임이 가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자수성가’라는 현재의 성취가 그것을 이루어 온 과정의 정당성을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가도를 달려오면서 반칙은 하지 않았는지,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속이지는 않았는지도 그에 해당한다. 윤리와 도덕, 정직과 신뢰는 이 같은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것이다. 설령 윤리나 도덕적인 문제가 터지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판단의 근거로는 기각할 것이다.

 

‘성공한 CEO’에게 거짓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짜여진 프레임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공한 CEO’에게는 성공 신화를 훼손할 수 있는 사실이 더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맥 풀린 세기의 대결 이후에 매니 파퀴아오는 대전료의 절반인 500억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로 파퀴아오에 대한 ‘빈민가 출신의 자선사업을 펼치는 모범적인 복서’라는 프레임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아마도 파퀴아오와 관련된 부도덕하거나 부정직한 사건이 터지더라도 사람들은 크게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경기 전 부상 사실을 숨긴 것이 이미 문제가 되고 있지만 공중은 그것을 심각한 거짓말 또는 부정직한 행위로 여기지 않고 있다. 

 

두번째는 엄격히 따지면 자수성가가 곧 공공에 대한 헌신과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노력했을 뿐인 사람이 사회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공공에 헌신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맥락이다. 다만 자수성가에 숨겨진 서사구조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영웅이 ‘세상을 구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커뮤니케이션에는 많은 프레임으로 짜여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휴리스틱(heuristics)에 기대어 진실을 가릴 수도 있다.

 

프레임은 창이다. 진실은 짜여진 틀 속에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틀 너머의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