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의 새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이전의 영화들을 떠올리며 분석적으로 관람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오래도록 많은 작품을 만든 감독의 세월이 주는 부담감일 것이요, 십수년만에 아는 척하며 영화를 볼 수 있는 반가운 작가를 만난 기쁨 때문일 것이다.
프롤로그는 장엄하고 웅장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리들리 스콧이 자신만의 우주관을 만들어내겠다는 욕심으로 읽혔다.
본 이야기로 들어가자 영화는 시종일관 '에일리언'과 비슷하게 진행됐다. 등장인물도, 사건도. 자신에 대한 오마주인지, 장르의 법칙인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딱 고만큼 에일리언을 닮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힘에 부쳤고, 긴장은 느슨했다. 여기에 반전도 놀랍지는 않았다. 에일리언은 모든 이야기와 긴장감을 우주선 안에 가두며 가득찬 공포를 보여줬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모든 이야기를 웅장한 우주 공간에 던져놓은 것마냥 공허했다. 아쉬웠다.
영화 종반으로 가며 '인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처음의 질문은 갈피를 잃었다. 아니, 어쩌면 애당초 그것을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게 아닌가 라고 관객에게 되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점차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확실히 하기 시작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또한 참으로 익숙했던 서사 구조의 이유에 대해서도 답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어쩌면 이 한장면을 위해 앞서 그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한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도박판에서 한 사람이 판돈을 한방에 싹쓸어 가는 모양새' 같았다. 영화 역사상 가장 개성있는 시리즈였던 '에일리언'은 그렇게 리들리 스콧 감독의 호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렇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의 프리퀼이다. 인류의 기원을 찾아 나선 그들이 발견한 건 에일리언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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